정보화마을 충북 제천 월악산약초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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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 월악산약초마을 전경사진입니다.

약초마을 전경 사진

덕산면 유래

제천시 9동 1읍 7면의 하나, 충청북도의 북부, 제천시의 남쪽에 위치한 산악지역으로서 동쪽은 단양군, 서쪽은 한수면, 남쪽은 소백산맥의 계림령을 경계로 경북 문경시, 북쪽은 수산면이 접하고 있다. 제천시까지는 육로로 55㎞이고 표고는 280m이며, 남서쪽은 국립공원 월악산이 위치하며 용하구곡의 자연경관이 빼어나며, 문화유적이 산재해 있어 문화관광의 고을로 자리잡고 있다.
고구려 시대 국원경 관할의 사열이현(沙熱伊縣)에 속해 있다가 통일신라시대에는 덕산향(德山鄕)이라 하였고 신라 경덕왕(757)에는 청풍(淸風)으로 개칭 내제군(奈堤郡)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 현종(1018)때에는 태원군(太原郡:지금의 충주)에 속하였다.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고려 때 덕산향(德山鄕)이 있었으므로 제천군 덕산면(德山面)이라 하여 선림(仙林), 도기(道基), 탄지(炭枝), 수촌(水村), 적곡(赤谷), 곡현(曲峴), 삼전(森田), 복평(洑坪), 송계(松界), 성내(城內)의 10개 리를 관할하다가, 그 뒤 신리(新里), 만도(晩道), 고목(古木), 성암(城岩)의 4 개 동리를 더두어 14개 리로 되었으며, 복평, 송계의 2개 리는 한수면(寒水面)에 넘겨주고, 청풍군(淸風郡) 원서면(遠西面)의 월악리(月岳里)를 편입하여 신현(新峴), 도전(道田), 수곡(水谷), 선고(仙古), 성암(城岩), 도기(道基), 수산(壽山), 월악(月岳)의 8개 리로 개편 관할하다가 수곡리를 수산에 넘겨주어 7개리가 되었다. 1980년 4월 1일 제천읍의 시승격에 따라 제원군에 속하게 되었다가 1991년 제천군 덕산면이 되고 1995년 1월 1일 도농통합에 따라 제천시 덕산면으로 되었다.
중앙부에는 하설산(1,028), 어래산(815), 다랑산(591)이 솟아있고 서부에는 본면에서 으뜸가는 명산으로 웅장기괴하여 산전체가 그대로 절경인 월악산(1097)이 우뚝 서있고 동부에는 아이산, 남부에는 대의산, 문수산(1,162)이 솟아 있으며 하천은 성천과 광천이 흐르고 있다.

덕산면 전설

팽개바위

제천시 덕산면 선고리 고목고개 남쪽 산밑에 높이 솟아 있는 바위가 있는데 이것을 "팽개바위"라 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군은 물밀 듯이 북상해 올라왔다. 왜장 소서행장(小西行長)이 이끄는 일진은 경상도의 험준한 세 재들의 관문을 넘어 충주에까지 닥치게 되었다. 이때 신립장군은 전세를 가다듬고 탄금대의 한강을 배수진으로 삼아 강력한 왜군과 대치하게 되었다. 이렇게 대치하고 있던 가운데서도 우리 군사와 왜군과의 사이에 내기가 벌어졌다.
피아(彼我)간에 힘이 제일 센 사람을 내세워 큰 바위를 집어던져 멀리 던진 편이 이기는 것으로 하고 진편에서는 군사를 이끌고 물러가기로 한 것이다. 왜군에서 힘센 군사 한명이 나와 바위를 던졌으나 왜군 진영 바로 앞에 떨어지고 말았다. 우리 편에서 나온 힘센 장사는 큰 바위를 냅다 던졌더니 멀리 날아가 보이지 않았다. 그 바위는 날고 날아서 지금의 선고리 고목고개까지 왔다는 것이다. 이 바위가 팽개바위(投石)라는 것이다. 내기에 진 왜장 소서행장은 물러가지 않았고 신립장군은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팽개바위 사진

너부내 아들바위

제천시 덕산면 도전리에 너부내라는 마을이 있다. 마을앞에 흐르는 넓은 내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믿어진다. 너부내를 광천이라고도 하지만 월악리에 있는 광천과 구별하기 위하여 도전광천이라 부른다. 도전광천에 아들바위라고 부르는 바위가 있는데 바위절벽 또는 바위낭떠러지라고 부른다.
옛날에 나이 지긋한 내외가 살고 있었는데 집안이 가난하여 남편이 정씨네 집에 들어가 일을 해주고 살고 있었으나 내외가 모두 부지런하여 주인집 일을 자기일처럼 해왔으며 주인집도 한집 식구처럼 대해 주었다. 공교롭게도 일꾼부부나 주인 부부가 소생이 없어 같은 처지라 서로 딱하게 생각하고 서로 위로하며 살아갔다. 몇해후 나이 먹은 주인영감의 부인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얼마후 주인영감도 세상을 떠났다.

너부내 아들바위 사진

정씨영감은 운명하기 전에 일꾼 내외를 불러 재산전부를 지금껏 서로 의지하고 살아온 일꾼에게 준다고 유언을 했다. 그러면서 꼭 한가지 당부하기를 어떤 일이 있어도 아이를 낳아 정씨 가문을 잇게 해달라고 했다. 주인의 전재산을 물려받은 일꾼 내외는 아이를 낳아 주인의 소원을 이뤄주는 것이 은혜 갚음이라 여기고 너부내 건너에 있는 큰 바위에 가서 날마다 치성을 드리기로 했다. 열달이 되도록 하루도 치성을 거르는 일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해산이 임박했다.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밤이 이슥해서 치성을 드리러 나가는 아내가 걱정이 되어 남편이 따라 나섰다. 산간의 냇물은 금방 불어 오른다. 내외가 건너는 너부내도 가운데에선 물이 가슴까지 채였고 금시 떠내려 갈 듯 물살이 세었다. 그래도 하루도 거르지 않겠다고 약속한 치성을 그만둘 수 없어 내외는 힘을 다해 건넜다.

남편은 냇가에 남게 하고 아내는 혼자 커다란 바위까지 올라가 제물을 차려놓고 치성을 드리고 남편은 냇가에서 비를 맞으며 서서 아내를 기다렸다. 남자가 산신에게 치성드리는 것을 보면 부정을 타기 때문에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날 따라 아내의 치성은 길어졌다. 아내가 치성을 드리는 동안 한꺼번에 밀어닥친 물살에 남편은 냇물에 휩쓸려 들어가 버렸다.비가 개였고 산속의 냇물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물이 쭉 빠졌다. 냇가에 남편은 없었다. 지루해서 먼저 돌아갔거니 생각한 아내는 혼자 집으로 돌아와 다음날 아침 옥동자를 순산했다. 그런데 사내아이가 태어나서 첫 국도 먹지 않았는데 동네 사람은 냇가에서 건진 남편의 시체를 들고 대문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하나의 생명은 죽고 하나의 생명은 태어난 것이다. 그후로부터 사람들은 치성드린 바위를 아들바위라 부르게 됐다.

자라소

제천시 덕산면 선고리에는 다른 곳에 있는 늪과는 아주 다른 아름다운 깨끗한 물이 고인 늪이 있는데 자라소라 부른다. 이곳은 산간의 작은 마을이지만 옛날에는 집집마다 소를 기르고 있었는데 이 소들을 험한 산에 매어 먹일 수 없어 냇가나 늪가에 매어놓아 풀을 뜯어먹게 하였는데 자라소 물가에 소를 매어 두면 소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동네 사람들은 상의한 끝에 힘센 젊은 사람을 골라 늪가에 몰래 숨어있게 하고 소를 매어놓고 어떻게 되나 지키게 하였다. 해가 중천에 걸린 한낮이 되었을 때 갑자기 쏴하는 소리가 나더니 물속에서 커다란 자라가 나타나 물가의 소의 발을 덥썩 물고는 물속으로 질질 끌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달려갔지만 소는 이미 물속으로 끌려간 다음이었다.
젊은 사람들은 분해서 이튿날도 소를 매어놓고 자라가 나오기만 기다렸지만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자라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동네 사람들은 자라소라 부르게 되었다.

자라소 사진

용초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에서 남쪽으로 십리쯤 가면 억수동에 이른다. 지금부터 사백 여 년전 억수동의 한마을에 양씨 성을 가진 젊은 부부가 살았는데 산에서 약초를 캐다 팔아 생계를 이어갔다. 양씨 부부는 비록 가난하지만 금슬이 좋아 늘 화목하게 지내지만 아이가 없어 걱정이다. 양씨부부는 산에서 약초를 캐고 내려 올 때면 으레 큰 바위 밑에서 아들을 점지해 주십사 하고 산신에게 치성을 드리곤 했다. 어느날 밤 양씨 부인은 선녀 셋이 구름을 타고 덩신덩실 춤을 추며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꾸었는데 그런 다음 태기가 있게 되었다. 양씨 부인이 잉태한지 열달이 되어 해산할 날만 기다렸으나 아기를 낳지 못하고 열두달째의 어느날 밤이었다. 남편인 양씨가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양씨 부인은 계집애 세쌍둥이를 낳고 산고로 숨이 진 것이다.

용초계곡 사진

양씨는 아내가 죽은 곳이 살기가 싫어서 세쌍동이를 안고 그곳을 떠나기로 했다. 양씨가 지금의 용초폭포가 있는 곳까지 왔을 때다. 갑자기 커다란 천둥소리가 나고 불이 번쩍하더니 땅이 갈라지고 꺼지기도 하는 것이다. 땅이 꺼져내려 가면서 절벽을 이루고 그 밑에 시퍼런 물이 괸 못이 생겼다. 양씨가 넋을 잃고 있는데 물속에서 용 한 마리가 크게 울부짖으며 튀어 나와 절벽 꼭대기에 올라와 양씨가 안고 있는 세 쌍둥이를 빼앗아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세 딸은 용과 더불어 승천해버린 것이다. 양씨는 부인을 잃고 지금 또 용에게 세딸을 빼앗기게 되자.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절벽에서 몸을 날려 방금 생겨난 시퍼런 못에 빠져 죽고 말았다. 양씨가 몸을 던진 곳으로부터 아래 못을 향하여 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용초와 용초폭포가 생겼다고 하고 양씨부인이 태몽에서 본대로 쌍둥이 세딸은 선녀가 되서 하늘로 올라갔고 부인은 용녀가 되었다고 마을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